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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의 90년대 성인 잡지 리뷰

월간 <나그네>를 읽었다. "원더풀 베리 나이스예요. 계속, 계속해요."

무지개 일곱가지 색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월간 <나그네>

1990년대 발행된 성인잡지와의 낯선 만남 
<플레이보이> 편집팀에서 일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우리의 대화에선 성적 단어를 두문불출하고 ‘자의 반 타의 반’ 성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노하우를 ‘일’로써 공유한다. 며칠 전에도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1996년도에 발행한 성인 잡지 월간 <나그네> 덕에 흥미로운 일이 생겼었다.  

표지는 디자인이라곤 아랑곳하지 않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총천연색이 난무했고, 내지를 훑어보니 ‘포르노 그린벨트’, ‘정력’, ‘남자사냥’ 같은 요상한 단어가 언뜻 있었다. 영화 <접속>, <동경> 등 풋풋했던 그 시절 배우를 닮은 커버 모델이 돋보였다. 하지만 ‘체위’, ‘스트립쇼 과부 도박단’, ‘화끈한 누드퍼레이드’ 등 어울리지 않는 볼드체의 향연은 빨리 표지를 넘겨버리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흥미를 끌었던 기사 몇 개를 소개한다.

여자 모델 화보와 최신 유머란을 함께 편집한 낯선 레이아웃

최신 유머 중 ‘정신병원에서’를 옮긴다.

“환각에 시달린다는 한 청년이 정신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를 진찰대에 눕히고 물었다. ‘뭐가 보입니까?’ 청년은 의사 옆에 있는 간호사를 보며 ‘아, 간호사가 옷을 다 벗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청년을 침대 위에서 밀어내며 이렇게 소리쳤다. ‘비켜 봐. 나도 한번 누워보게’ 
생각보다 알찬 ‘노 굿’ 섹스태도 기사 전면

진보적인 노하우를 담은 섹스 칼럼 
첫 번째 ‘노굿 섹스태도’라는 기사다. 꼭지 이름부터 심상치 않게 ‘디지탈 테스트’라 적혀 있다. ‘털’을 ‘탈’로 한 글자만 바뀐 건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글의 화자는 미루어 짐작하건대 신혼 초기를 보낸 남성인 듯하다. 기사 중간 중간에 노굿 섹스태도에 대해서 오타를 남발하며 경험담을 쏟아낸다. 마치 친한 남동생과 여동생을 앉혀두고 섹스를 혐오하거나, 굿 섹스를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 ‘생각보다’ 진보적인 말투로 술술 풀어갔다.

몇 가지 사례를 요약하면, 상대가 섹스를 혐오할 경우 아내의 성장환경, 남편의 매너에 문제가 없는지 열린 대화를 나눌 것, 진정한 오르가슴은 공동의 노력에 의해 얻어짐을 이해시킬 것, 국민학교 선생님처럼 침대에서 명령내기를 일삼지 말 것, 여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인 자신감을 가질 것, 사랑의 밀어는 지나치면 오히려 방해된다는 꽤 구체적인 조언들이었다. 사랑의 밀어를 예를 들 때 “그래, 그렇게, 원더풀 베리 나이스예요. 계속, 계속해요.”라는 대화의 예시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미국 성인물이 인기가 좋았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꼭 한번씩 하고 싶게 만드는 심리 테스트

충격 그 자체, 4인조 스트립쇼 과부 도박단 
두 번째로, 월간 <나그네>의 표현법을 빌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사도 있었다. ‘사건 25시’라는 꼭지에서 과부를 사칭한 4인조 스트립쇼 과부 도박단의 이야기다. 처음에 돈을 잃어주다가 큰 판돈이 오가면 옷을 벗고 남자들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 뒤 거액을 탈취했단다. 꼭지를 위해 조작된 기사가 아니라면 거의 성인 영화에 어울리는 탄탄한 시나리오로 손색없겠다. ‘포토 스페샬’ 코너에는 ‘포르노 클럽’이 조명됐다.

당시에는 서울 3대 나이트클럽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포르노 클럽이다. “토요일 저녁 8시, 남자들은 핸드폰이 기본이고 머리 염색, 귀걸이 등 온갖 멋은 다 부리고 있다. 여자들은 초미니에 과감한 옷차림이 일색이었다”로 시작한 기사는 광란의 도가니인 클럽 전경을 비추었고, ‘깨알’ 같이 클러버들의 눈만 모자이크 처리해놨다.

설문지며 상황 설정이며 모두 ‘크리에이티브’한 전희 테크닉 테스트

섹스 테크닉을 쉽게 전수하는 창의적 방법론
가장 뚫어지게 봤던 기사도 있다. ‘엑스터시 체크, 나를 불타오르게 하는 전희 테크닉’이란 깜짝 테스트 기사였다. 제목만 보면 성의학적 지식이 총동원돼 크리닉 같은 정보를 떠올리겠지만 절대 아니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재미만을 위한 심리테스트처럼 소설 같은 상황을 주고 어떤 선택지를 택하냐에 따라 그에 맞는 테크닉을 ‘일방적으로’ 전수해준다.

예를 들면, 야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하러 공원을 걸어가는데 뒤통수 야구공을 맞았다. ‘어디에 맞았을까?’가 질문인데 등, 가슴, 아랫배, 무릎 안쪽 등 답지에 따라서 바스트 애무가 좋은지, 오럴이 좋은지 답을 내주는 방식이다. 일방적이고 근거 없는데도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함정일까? 굉장히 과학적인 은유였거나 기자가 최소 등단한 소설가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펜팔과 폰팔 회원 모집 중인 지면 광고

문자 말고 편지와 전화로 연애하던 시절 
월간 <나그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광고는 남성 기능 강화 기구와 펜팔, 폰팔을 찾는 광고였다. 여자는 입회비 1000원, 남자는 입회비 1000원에 우표를 9장 얹어서 보내야 한다. 더 많이 보낼 수록 이상형의 연락처와 주소를 넘겨받는 속도가 빨라진다나.

억지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박스 코너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 좋은 남자가 되려면 
요즘에 ‘아재 개그’의 연원도 찾을 수 있었는데 ‘개그박스’라는 코너에 여러 주제로 썰렁한 개그들이 포진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써먹을 용도는 아닌 것 같다. 도둑, 속옷, 동물원에서, 노처녀의 슬픔이란 주제의 개그물를 읽으면서 등골이 오싹해졌기 때문이다. 2018년에 활용해볼 요량이라면, 무더위 탈피용에 제격이겠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웃긴 ‘비자금 서적 베스트 5’를 옮긴다.

비자금 서적 베스트5
1위: 비자금 길라잡이
2위: 전두○ 무작정 따라하기
3위: 대통령 1주일만 하면 노태○만큼 챙긴다
4위 저는 비자금을 하나도 모르는데요
5: 대통령 참 쉽네요

2000년대생의 2000년대 성인 잡지 리뷰?
1990년대에는 ‘성 해방’, ‘성 개방’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더 자주 등장한 시대다. 이런 자유로운 물결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혼전 성관계, 연애에 대해 더욱 세련된 태도를 따르려고 애썼다. 소위 쿨하게 즐기는 관계를 뜻하는 ‘엔조이’가 유행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혼전 성관계에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결혼 후 성에 관해서는 기존의 도덕을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도덕주의와 남성 위주의 성문화가 팽배한 사회였지만, 대학교에서는 여성학이 유행처럼 개설되고 동성애 클럽이 활발하게 운영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모순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월간 <나그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오르가슴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성은 원래 성욕이 없다고 맹신하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을 ‘여성적’이라고 표현했다. 포르노 클럽이라는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를 다루면서도 담배 피우는 여자에게 부정적인 말을 건네는 것을 일종의 관행처럼 여겼고, 결혼한 여성을 ‘마누라’라 비하하며 우스갯소리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우리가 성에 관해 모순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모순을 일삼는다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사회적으로 젠더 평등을 외치면서도 많은 개인의 입에선 ‘여혐’, ‘남혐’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게 아닐지. 지금으로부터 29년 뒤 사람들은 플레이보이 코리아의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마광수 교수도 해낼 수 없었던 것처럼 성에 관한 모순적 태도를 뿌리뽑진 못 할 거다. 하지만 ‘2000년생의 2000년대 성인 잡지 리뷰’에서 꼭 있었으면 하는 표현이 있다. ‘한국의 성문화와 관련해 ‘모순’이라는 엉킨 실타래를 풀진 못했지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느슨하게 만들긴 했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닥터 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