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가 말하는 섹스

'섹스 포지티비티'를 곳곳에 녹여내고 있다.

이번 주, <그레이 아나토미>는 <ER>을 제치고 미국에서 황금 시간대에 가장 오랫동안 방영된 의학 드라마로 등극했다. 2019년 현재의 <그레이 아나토미>는 2005년에 당신이 즐겨 봤던 그런 드라마가 아니다. 그동안 적어도 5명의 의사가 목숨을 잃었다. 맥드리미, 맥스티미, 렉시, 조지, 그리고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 감전사한 인턴까지. 병원 이름도 ‘시애틀 그레이스’였다가 ‘시애틀 그레이스 머시 웨스트’, 그리고 다시 ‘그레이 슬론 추모 병원’으로 바꼈다. 하지만 무려 15시즌과 332개의 에피소드를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이 드라마가 은근 획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가 섹스를 다루는 방법이나 의료진이 섹스에 대해 대화하는 방식 그리고 작가들이 시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고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애틀 그레이스’는 우선 교육병원이다. 인턴과 레지던트에게 그들이 필요한 모든 의료시술법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중에는 보편적인 연민과 환자를 대하는 옳은 태도가 있다. 더불어 섹스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인턴을 교육하는 순간마저 재밌게 묘사할 때도 있다. 시즌 2에서 크리스티나 양(산드라 오)이 통증 완화의 목적으로 포르노를 사용하는 환자(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이 그에게는 효과가 없었다)를 보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에피소드를 떠올려보도록 하라. 갑자기 병원이 정전되자 그는 포르노를 볼 수 없게 됐고 극심해진 통증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는 그에게 자신의 섹스 라이프를 이야기로 해주면서 환자의 통증을 완화해준다. 이 장면은 다양한 ‘짤’을 생산한 기록적인 장면이다. 이야기에 등장한 세 명의 간호사들도 후끈하고 섹시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야한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도 웃기지만, ‘섹스가 통증 완화에 도움될 수 있다’는 다소 전통적이지 않지만 의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예시를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섹스 포지티비티(Sex-Positivity 섹스를 타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신의 섹스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순간들은 대게 감동적인 스토리들로 그려진다. 시즌 4에서는 뇌 종양이 발견된 두 명의 십대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담당의에게 잠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의 담당의였던 맥드리미(패트릭 뎀시)와 메러디스(엘렌 폼페오)는 이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문 밖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보호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그 전에 데릭은 그의 십대 환자가 그에게 섹스가 어떤 것이냐고 묻자 “마법 같은 것”이라고 답해주기도 했다. 반면, 메러디스는 “너에게 맞는 사람과 하면 말이야”라고 강조한다.

이 드라마는 지금껏 일관되게 섹스가 쉬쉬해야 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포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또 의사들은 환자의 기분을 헤아리는 방법이나 타인의 섹스 라이프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는 장면도 몇 차례 등장한다. 야외 활동이 어려울 정도의 고도 비만 환자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자, 인턴과 레지던트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처럼 뚱뚱한 남성도 섹스한다는 것을 비웃는다. 그러던 중 남성의 아내가 다른 사람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 추측성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니라며 일침을 가하자 의사들은 입을 굳게 닫는다.

300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방영된 <그레이 아나토미>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섹스 시나리오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가족들에게 자신은 아직 팔팔하니 모든 재산을 자신의 페니스 확장에 탕진해 성적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싶다며, 그것은 정당한 권리라고 말한 노인도 있다. 또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오르가슴 때문에 교통사고가 난 여성이 수술을 앞두고 의사들에게 수술 후에는 성적인 자극을 통해서만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을지 확인 받고 싶어하는 장면도 있다(담당의는 그렇게 될 거라 장담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이 페니스 쥬얼리가 여자의 자궁 내 피임기구에 걸려 그가 그녀에게 삽입한 상태로 무기한으로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된 한 중년 커플의 심각하지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도 있다.

지금까지 방영된 <그레이 아나토미>의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드라마 내에서 다룬 섹스를 살펴보면 두 가지의 일관적인 내용이 존재한다. 의사들은 주로 엘리베이터에서 섹스를 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환자들이 섹스를 할 때에는(혹은 하고 싶어할 때, 아니면 더 만족스러운 섹스를 하고 싶어할 때는) 약간의 학습을 거친 뒤 의사들이 이들을 적극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지금껏 일관되게 섹스가 쉬쉬해야 하는 것이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포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트위터나 유튜브가 등장하기 전, 심지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섹시 백>을 부르기 전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라고 생각해보면 꽤나 혁신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Credit

  • 에디터 김민지
  • Molly Horan
  • 사진제공 IMDb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