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는 헛소리다

통계학적으로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보다 유람선 지붕 데크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20대 초반, 나는 웨딩 비디오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두 남녀가 예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여는 모든 과정을 촬영한 웨딩 비디오. 그 안에는 감성적 음악과 슬로우 모션들, 핀터레스트(Pinterest)에 올리면 좋을 작은 디테일들이 가득했다. 비디오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점과 별로인 점에 대해 수다 떠는 일도 좋았다. “어휴, 나무에 전구 매단 거 맞아?”라고 나는 팬티만 입은 채 쇼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비판하곤 했다. 혼자 영상을 보면서 욕해본 적 있는가?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비디오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많은 동영상에서 발견한 비슷한 패턴이 나를 언짢게 만들었다.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신혼부부가 하는 결혼 서약 때문이었다. 결혼 당사자 중 한 명, 혹은 모두가 서약하면서 “소울메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신부는 신랑을 처음 본 순간 그 사람이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알았다고. 신랑은 그녀가 자신의 영혼 쌍둥이라고 느꼈으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둘은 서로를 만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또 둘은 너무나도 잘 맞는다나? 내게는 별로 로맨틱하지 않다. 소울메이트라는 말이 악몽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모두는 이제부터 그 말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 속에서 폐기해야 한다.

소울메이트라는 개념은 간단하다. 문학, 시 그리고 형편없는 로맨틱 코미디로부터 생겨 빠르게 확산한 단어로, 어딘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한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질문에 답을 줄 사람, 모든 잘못을 옳게 만들어 줄 사람,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을 줄 한 사람 말이다.

나는 인생에 여러 명의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몇 명은 로맨틱한 파트너일테지만, 나머지는 친구와 가족들이다.

그러니 단 한 사람의 소울메이트는 헛소리다. 우선 이 세상에 딱 맞는 사람이 한 명뿐이라면 그 사람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구상에는 대략 75억 명의 인구가 있는데 평생을 함께해야만 하는 그 사람이 우연히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수업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운명이니 뭐니, 당신이 원한다면 마음껏 믿어도 되지만 정말이지 웃기는 얘기다. 통계학적으로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보다 유람선 지붕 데크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직접 검색해봤다. 유람선에서 떨어질 가능성은 625만분의 1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를 무시하더라도 소울메이트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처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우리에게 내던진다. 만약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설거지가 다 된 식기세척기를 비우지 않는 그의 습관은 못 참아주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이 소울메이트가 아니라는 뜻일까? 이혼한다면 아직 소울메이트를 찾지 못한 걸까? 우리에게 소울메이트가 있다는 생각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사람을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빵집에서 식빵 하나를 고르는 것도 힘든 사람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우주에서 영혼을 나눌 한 사람을 내가 골라야 한다니!

나는 인생에 여러 명의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몇 명은 로맨틱한 파트너일 테지만, 나머지는 친구와 가족들이다. 일부는 우리의 멘토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소울메이트라는 말보다 파트너가 더 좋다. 온 우주가 맺어준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같이 함께하기로 한, 내가 선택한 사람이 더 좋다는 말이다. 파트너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변하고 한계를 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파트너라는 표현도 인생에서 많은 사람에게 해당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혼 서약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훨씬 사실적인 관계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관계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번역 이연정
  • Maria Del Russo
  • 사진제공 PinkCat/Shutterstock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