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춘화의 속사정

중국은 너무 기상천외하고 일본은 과장됐으며 한국은 그나마 점잖은 축에 낀다. 정말 그럴까?

성애(性愛)를 묘사한 그림을 동북아시아에서는 ‘춘화(春畵)’라고 불러왔다. 중국에서는 ‘춘화’ 혹은 ‘춘궁화(春宮畵)’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슌가(춘화)’라고 한다. 하지만 담벼락에 성기 모양을 큼지막하게 그려 놓은 걸 춘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분명한 목적을 위해 주의 깊게 만든 이미지를 춘화라고 한다. 이처럼 춘화는 문화적 맥락을 지닌 산물이기에 해당 시대와 사회가 성에 대해 갖는 관념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미리 말하자면, 시대와 사회를 파악하는 수단이 되기에는 춘화는 의외로 ‘불투명하다’.

춘화에 대한 기록은 한대(漢代)부터 등장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중국 춘화는 대부분 명대(明代)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일본의 춘화도 처음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걸 보고 배운 것으로 여기지만, 그 연결 고리는 분명치 않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이후 전통 목판화 형식인 우키요에(浮世絵)를 통해 춘화가 폭발적으로 제작, 유통되었고, 그 때문에 양적으로 일본의 춘화는 중국과 한국을 압도한다. 세 나라 중에서 한국의 춘화가 가장 수가 적다. 그러다 보니 아름답거나 흥미로운 것도 적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것으로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낙관이 담긴 춘화들 수십 점이 연구 대상의 거의 전부이다. 이걸로 한국 춘화의 패턴을 도출하고, 조선의 성(性)문화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느라 연구자들은 진땀을 뺀다.

중국의 춘화를 이야기할 때는 전족(纏足)을 빼놓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전족은 여성의 발을 어렸을 때부터 단단히 감아서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 풍속이다. 전족을 하게 되면 여성의 발이 안쪽으로 구부러지면서 질(膣) 근육이 발달하여 성교할 때 남성의 쾌락을 증대시킨다고 믿었다. 자그마한 발의 모양, 오랫동안 감아둔 발에서 나는 냄새에 대한 페티시즘도 발달했다. 중국의 춘화에서 여성은 철저히 순종적이다. 남성은 한 명인데 여성은 다수가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남성은 한 명의 여성과 관계를 하고, 나머지 여성은 둘의 행위를 보좌한다. 하녀들이 주인공 남성의 엉덩이를 밀어주거나, 남성과 관계하는 처첩의 몸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떠받쳐서 남성이 삽입하기 편하게 한다. 이처럼 보조하는 사람, 그리고 여타 보조하는 기구를 통해 기상천외한 자세를 연출한다. 중국 춘화 속의 배경은 남성 주인공의 절대적인 권력이 관철되는 공간이다.
일본의 춘화에서는 남성의 권력이 이처럼 강고하지는 않다. 남녀가 한창 일을 치르는 중에 여성의 남편이나 남성의 단골 기생이 들이닥쳐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교접하는 남녀는 설령 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화면 밖에서 작용하는 힘을 의식한다. 중국과 일본 모두 춘화에는 성행위를 엿보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엿보는 인물은 행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자신도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일본에서 엿보기는 다음 순간의 사건(예를 들어 습격)으로 연결되거나, 행위를 하는 이들의 쾌감을 증대시키거나, 엿보는 사람 자신을 자극한다. 중국 춘화와 비교하면 일본 춘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계급상으로 중간, 아니면 그보다 아래에 속한다. 중국 춘화의 주인공들처럼 널찍하면서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 또, 중국 춘화 속 주인공 남성이 자신의 영향권에 속한 여성을 내키는 대로 골라 성행위를 했던 것과 달리 일본 춘화 속 남녀는 비슷한 계급 관계 안에서 짝을 찾고 또 자기 짝을 속여 가며 다른 짝을 찾느라 복작거린다.

한·중·일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춘화에 여성들의 입장과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대응과 저항, 혹은 나름대로 타협하고 공모하는 방식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그림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없다. 특히 중국 춘화에는 한 남성(엄청난 부와 권세를 지닌 자)에 부속된 여러 처첩의 갈등과 암투 같은 게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들 인형 같은 표정만 짓고 있다. 이따금 눈을 찡긋하거나 입을 움찔하면서 성애의 즐거움을 드러내는 정도다. 일본 춘화 속 등장인물들은 제법 표정이 풍부한 편이다. 당황하거나 흥분하거나 불안해하거나 꺼림칙해 하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스스로도 버거워하면서 몰입하는 절정의 표정은 일본 춘화에서만 볼 수 있다. 조선의 춘화 속 인물들의 표정은 어떠냐면 허허롭다. 전체적으로 느긋해 보이고 뭔가 맺힌 데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걸로 한·중·일의 성에 대한 관념과 태도를 판단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오늘날 한국인들이 성을 대하는 태도를 넉넉하거나 허허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이미지는 뭔가를 왜곡한다. 일본 춘화를 처음 본 사람들은 성기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것을 보고 놀란다. 이게 웬 허풍이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로 일본 남자들은 이렇게 컸던 걸까, 하면서 지난밤에 본 야동을 반추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일찍부터 성기를 크게 그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거근(巨根) 강박이다, 성기에 대한 페티시즘이다, 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쥐어짜 보았지만, 여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이미지가 뻔히 주어져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미지는 뭔가를 숨긴다. 중국과 일본의 춘화에는 남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이 이따금 나오고, 일본의 춘화에는 ‘프렌치 키스’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춘화에는 키스를 하는 모습이 없다. 적어도 아직은 그런 춘화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키스하지 않고 행위만 해서 우리를 낳았던 걸까? 그럴 리야 없다. 당장 <춘향전>만 봐도 현란한 애무와 키스가 등장한다.

춘화라는 이미지에서 풍속과 성 의식을 기계적으로 뽑아내려는 시도가 위험하다는 뜻으로 나는 이따금 ‘키스가 없는 춘화’라는 말을 써 봤지만 반향은 없었다. 춘화를 통해 본 ‘한·중·일 삼국지’는 민족적 자부심이 넘치는 독자에게는 전혀 흡족하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한중일의 춘화를 이미지만 놓고 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란히 비교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이연식 |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눈속임 그림>, <아트 파탈>,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괴물이 된 그림> 등을 썼고, <무서운 그림> 시리즈,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등을 번역했으며 미술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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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백가경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