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누나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누나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썰.

중2 때인가 중3 때쯤이다. 30대에 접어든 지금 생각해보면 2~3살 정도의 터울은 동갑내기 같지만, 그때 당시는 지적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발육상태로 보나, 모든 면에서 월등히 차이 난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엔 철망 하나 사이로 바로 옆에 고등학교도 있었다. 아침에 등굣길 버스에선 마치 짠 듯이 모두 빨간색 틴트를 바른 고등학생 누나들, 갖고 싶던 맥스를 신고 있는 고등학생 형들이 있었다.

그저 <디아블로2>에서 조던링(레어 아이템)이나 찾느라 매일같이 바알(몬스터)이나 잡던 나에겐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 친구. 나와 같은 찐따지만, 맥스95 까치산, 고추장 포스 등 이런 것에 관심 많은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구한 박빙 급 (박스째 새것) 맥스를 보기 위해 그의 집에 갔다. 그 친구는 학교 바로 앞,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자 교복 위에 큼지막한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은 옆 고등학생 누나가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면서 문을 열어줬다. 난 그때 ‘샤크라’ 려원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뭔가 불량하지만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던 누나를 처음 봤던 이미지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순간, 맥스고 나발이고, 내 눈엔 오직 그녀만 담겼다. 한 눈에 반한다는 것이 단 0.001초 만에 이루어진다는 개소리를 믿는 이유는 온전히 그때 그 경험 때문이다. 누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누나에게 “씨X 내 노스페이스 입지 마라”며 소리를 질렀다. 침을 튀겨가며 자기 맥스를 자랑한 친구와 나는 약 30분 정도 함께 맥스를 구경하고, 피시방에 갔다. 그날따라 내 바바리안(<디아블로2> 캐릭터)의 도끼는 힘을 못 썼다. 온통 내 정신은 그 친구 누나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게임을 끝내고, 피카추 돈가스를 먹으며 친구에게 “너 누나 예쁘다”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정색을 하며, “다시는 걔 예쁘다는 소리하면 함께 피시방을 가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정말 자신의 누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은 중학생 시절과는 좀 달랐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추종자가 조금 생겼다. 스스로 찐따라 생각했던 중학생 시절과는 달리 병신 같은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었고, 스무 살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 친구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만났다. 스무 살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관심사가 맥스에서 이성으로 바뀐 거 빼곤. 어른이 되자 그 친구는 누나와 부쩍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해외 어딘가로 가셔서 밤새 맥주 마시면서 영화나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약 5년 만에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 누나 역시 친구를 불러서 신나게 파자마 파티 비슷한 걸 하고 있었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재미있게 놀았고, 중학생 시절 내가 아닌 자신감이 한참 차오르던 나였기에 그 누나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젠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누나가 걸렸다. 이미 술이 오를 대로 올라있던 누나를 보고 내가 흑기사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런 누나는 나를 귀여운 동생으로 여겼다. 나를 끌어안아 주며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는데, 샤워 코오롱 인지 살냄새인지 뭔지 모를 상큼한 냄새가 알코올 냄새랑 섞여서 내 코를 찔렀다. 내 친구는 그 광경을 보고 똥 보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신의 가족을 이성으로서 대한 내가 오그라들었나 보다. 어쨌든 우린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고, 헤어졌다.

며칠 뒤, 싸이월드 미니홈피 쪽지가 왔다. 그 누나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쪽지였다. 허세로 가득 찬 내 미니홈피를 보고 한 리액션으로 추측한다. 바로 난 ‘네이트 온’ 쪽지를 보냈고, 우리는 밤새 대화를 나눴다. 그때부턴 내 친구에게 말하기 모호한 서로의 비밀을 계속 공유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린 번호를 교환하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나 강남역 홍X불닭인데 올래? 나 내 친구 커플이랑 있는뎈…. 외롭ㄷrㅋ”

‘왜지? 외로운데 왜 나를?’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마침 나도 그때 신사동에 있었기 때문에 강남역에 금방 갈 수 있었다. 커플에 홀로 마주 앉은 누나가 보였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누나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말한 걔가 얘야. 나는 얘 중딩 때부터 봤어~”

날 소개해줬다. ‘중딩 때부터 본 애’라는 말이 좀 거슬렸다. 우리는 홍X불닭에서 파는 시그니처 술인 새빨간 홍X주를 마시며, 누룽지탕을 먹었다. 그 커플도 나를 귀여워해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데, 자기들도 20대 초반이면서 날 파릇파릇하고 귀여운 동생 취급했다. 하지만 이 누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귀여움’이라고 판단해 스무 살 특유의 패기와 귀여움으로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 우리는 술자리가 끝나고 일산으로 가는 막차가 끊겨 광화문까지 버스 타고 갔다. 사람이 붐비는 막차여서 나는 누나를 앉히고 옆에 서서 버스를 탔다. 그녀는 서 있던 내게 기대 잠들었고, 난 서울역까지 불편한 자세로 갈 수밖에 없었다.

홍X불닭
홍X불닭 누룽지탕
강남역 뒷골목

서울역에 내렸는데 일산가는 버스가 끊겼다. 당연했다. 늦었으니까. 애초에 서울역까지 갈 버스조차 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모텔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했다. 그냥 같이 있고 싶었다. 누나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DVD방에 가기로 합의했다. 택시를 타고 신촌 근처에 있는 DVD방에 갔고, 거기서 영화를 보고 첫차를 타자고. 영화는 <트레인스포팅>이었다. 그 당시 나의 롤모델이자 뮤즈였던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로, 누나에게 멋있는 척하기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어차피 난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10번은 넘게 본 영화를 골랐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초반 이기 팝의 ‘Lust for Life’이 흘러나올 때부터 나는 애매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중간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 기억 속엔 DVD방 안을 가득 메웠던 알코올 향과 ‘쌕쌕’ 코로 숨 쉬는 소리와 심장소리만 기억난다. 어쩌다 누나와 다리를 포개게 되었고, 소주에 마비된 내 입술에 그 누나는 자신의 인중을 들이밀었다. 나에게 보내는 신호 같았다. 알코올에 절은 상태에서 하는 입맞춤은 매우 짜릿했다. 치과 치료를 받을 때 그 느낌. 마취한 상태인데 내 입안에서 뭔가 계속 달그락거리는 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 너 귀여워하면 안되겠다~”

그리고 그 누나는 내가 그때 당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나에게 선사했다. 내가 상상도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그렇게 <트레인스포팅>은 끝났고, DVD방 아르바이트가 잠들었는지, 영화가 끝난 지 2시간이 지나도 우릴 깨우지 않아 우리는 잠을 푹자고, 첫차를 탔다. 그게 끝이다. 친구에게 미안했기도 하고. 중학생 시절 나에게 여신과도 같았던 친구 누나와의 스킨십은 마치 전설로만 내려지는 미지의 땅, 아틀란티스를 직접 내 눈으로 본 것과 같은 경이로움이었다. 난 그 아틀란티스에 발을 들인 것뿐만 아니라, 그 땅을 개간까지 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진 않았다.

후회는 없다. 그녀도 그럴까? 번호는 그대로더라. 여전히 ‘카톡’에 뜨는 그녀. 나랑 같은 ‘던힐 프로스트’를 폈던 누나.   

   

Credit

  • 에디터 윤신영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