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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직 안 죽었어

'스타'는 두 세대를 통합할 수 있을까?

“공부 못한다”는 소리는 웃어넘길 수 있어도 “게임 못한다”는 타박에는 얼굴부터 붉어지는 것이 모름지기 게이머의 자존심. 슈팅, 퍼즐류의 점수 높이기 경쟁부터 이어져온 ‘겜부심’의 역사는 1980년대 후반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전 게임에 이르러 일종의 비무(比武)와 같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펀치, 킥, 콤보로 초식을 겨루던 대전 액션 게임에서의 비무는 ‘스타크래프트’ 시대에 접어들며 지역을 넘어 강호의 영역을 넓혔다. 네트워크 온라인 대전은 사이버 강호 게이머들을 실력대로 줄 세울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스타’와 함께 등장한 PC방은 각 세력 본산으로 자리하며 길드의 기원이 되거나 다른 PC방을 깨러 가는 ‘도장깨기’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초기 ‘스타’의 현장에 있던 게이머들은, 돌이켜보면 모두 무림에 몸담은 일종의 ‘협객’이었다.

홍진을 피해 몸을 숨겼던 강호들이 쏟아져 나오니 온 게임 천하가 진동했다. 게임 전문 채널이 생겼고,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고수들이 프로 게이머가 되어 승부를 겨뤘다. ‘화산논검(華山論劍)’ 격인 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면 구름처럼 관객이 밀려들었다. 이제는 전설로 회자되는 ‘2004년 광안리 10만 관객’은 스타크래프트 시대의 절정이었으며 다가온 미래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의 아름다운 시절은 환영처럼 수그러들었다. 강호의 도를 땅에 떨어뜨린, 이름도 거론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승부 조작 사건부터 ‘스타 리그’의 찬란한 빛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스타 리그 엔딩에서 눈물을 보인 MC용준의 떨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에 왕좌를 내어준 스타크래프트는 2편의 부진, 새 게임들의 약진 속에 추억 속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추억이라고 해서 열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식 리그는 내려갔지만 인터넷 방송을 통해 왕년의 선수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아프리카TV’, 스타리그 등의 형식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출시한 지 20년이 지난 이 게임은 여전히 PC방 게임 순위의 10위권을 차지하며 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움에 사무치던 ‘아재’들에게 출시 20주년 소식은 그래서 일종의 광명이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된다니.

요즘 게임과 비교하면 모자이크를 방불케 하는 구세대 그래픽 화면이 4K UHD급으로 깨끗해졌다. 그 유명한 전설, 미사일 터렛 가운데에 사람이 있다 없다 논쟁은 고화질 그래픽에 있었다. 정답은 그래픽 오류일 뿐, ‘없다’. 프로게이머들도 내용을 잘 몰랐다는 ‘싱글 플레이 캠페인’도 성우 더빙을 포함한 완벽한 한글화로 깔끔하게 복각되었다. 단지 리마스터 계획을 발표한 것만으로 아재들의 커뮤니티는 열광으로 넘쳐났고, 곧이어 자신들의 무용담으로 게시판을 도배했다. 커뮤니티의 뜨거운 반응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막상 반응은 기대만큼의 열광을 불러모으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리마스터가 현 세대 게이머들의 입맛에 꼭 맞춰 신세대 게이머들의 유입을 노린 것은 아니겠지만, 팬들이 기대한 만큼의 신세대 유입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임 노장’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이미 그들은 게임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현 세대가 아닌 것이다.

게임 매체는 기술에 크게 기대고 있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한 세대를 넘은 흥행을 기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1990년대에 등장한 일본의 ‘포켓몬스터’는 나름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영·유아층에서의 인기가 포켓몬스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요괴워치’의 등장으로 과거만큼의 파급력까지는 아니라는 점은 스타크래프트의 리마스터 이후 세대 확장 과정을 생각할 때 함께 고려해볼 요소다. 기술은 단지 그래픽이나 인터페이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 영역에 얽혀 함께 변화해나가는 과정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설령 스타크래프트가 다시 한번 젊은 세대의 중심에 설 수 없다 해도 리마스터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닐 터. 리마스터 이후 몇 년 만에 PC방에 돌아온 아재 협객의 존재는 게임 세대가 특정 연령층이 아닌 전 세대로 확장되는 과정의 증거다. TV에서 <뮤직뱅크>와 <가요무대>가 공존하는 것처럼,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스타크래프트와 요괴워치를 PC방 옆자리에서 나란히 즐길 수 있는 모습을 향해가기 시작하는 이정표로서만으로도 이 고전 명작의 복각은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이경혁 | 게임 칼럼니스트로 게임 분석과 비평은 물론 게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와 논의를 섬세하게 다룬다. 그는 <한겨레21>, <국방일보> 등에 칼럼을 썼고, 작년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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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양보연
  • 이경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