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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머슬카

머슬카 문화는 뚝심 있는 플레이보이들이 일궈낸 위대한 성과다.

“당신은 머슬카(Muscle Car)를 좋아하나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한국 남자는 이렇게 대답할 거다. “아니요.” 그러곤 한마디 덧붙이겠지. “대체 왜요? 기름도 많이 먹고 세금이나 보험료도 무지 비싼데.” 어쩌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 다. “머슬카가 뭐예요?” 안타깝지만 한국에서 ‘머슬카’라는 존재의 위치는 딱 거기까지다. 유럽산만 못한 헐렁한 스포츠카 내지는 아무도 관심 없는 마이너리티.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머슬카는 세상 무엇보다 ‘플레이보이적인’ 자동차라는 것.

1950년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경제가 활성화되어 시중엔 돈이 넘쳐났으며, 사회는 낭만으로 가득했다. 자동차는 그런 미국 경제 황금기의 아이콘이었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 국가들이 자원을 아껴가며 소형차를 만들 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풍족한 자원과 자금을 등에 업고 아낌없이 크고 화려한 자동차를 찍어냈다. 거리는 이내 보닛에 거대한 엔진을 담고 길게 빠진 트렁크 끝에 비행기 제트 엔진 모양 장식을 얹은 차로 가득 찼다. 스타일이 충족되자 사람들은 성능 좋은 자동차를 탐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성능 면에서 유럽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발 빠른 거상들이 독일과 영국의 스포츠카를 공수해왔다. 하지만 이를 소비한 건 경제력이 충분한 사람들뿐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보통의 미국 남자들은 평범한 승용차에 힘센 대형 엔진을 직접 얹고 밤 거리로 나섰다. 그러곤 길게 뻗은 도로에 모여 이 길 끝에서 저 길 끝까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지 겨루는 걸로 고성능 자동차에 대한 욕구를 해소했다. 미국 특유의 핫 로드(Hot Rod) 문화였다. 머지않아 유럽의 탄탄한 차체에 미국산 경주용 엔진을 얹은 스포츠카(쉘비 머스탱)가 등장했다. 그들 스스로 ‘유럽차 못지않다’고 자부한 순수 미국 스포츠카(쉐보레 콜벳)도 선보였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젊고 저렴한 유사 스포츠카(포드 머스탱) 역시 빠지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 콤플렉스를 떨쳐내고 빠르게 자신만의 스포츠카 세계를 만들어 갔다. 미국 스포츠카의 전성기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정점은 머슬카였고, 시작은 1964년에 등장한 폰티악 GTO였다. 날렵한 2도어 차체에 6.4리터에 달하는 V8 엔진을 얹은 GTO는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커브를 돌 때는 휘청거려도 길게 뻗은 도로를 내달릴 때의 쾌감은 페라리가 부럽지 않았다. 미국의 젊은 속도광(狂)에겐 축복과도 같은 자동차였다. 미국 〈웹스터〉 사전도 머슬카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강력한 주행에 걸맞은 엔진을 얹은 미국산 2도 어 스포츠카 종류.’ 좀 더 상세하겐 큼지막한 V형 8기통 엔진과 뒷바퀴 굴림 구동계를 갖춘 문 두 짝짜리 승용차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머슬카는 미국에만 존재하는 자동차 부류다(아, 미국 자동차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은 호주도 머슬카가 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제조사조차 V8 엔진의 뒷바퀴 굴림 쿠페를 만드는 최근을 생각하면 머슬카는 ‘미국산’이라는 특징 말고는 딱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물며 시중에는 강력한 엔진 파워, 정교한 움직임에 호화찬란한 인테리어까지 갖춘 유럽산 정통 스포츠카가 널리고 널렸다. 이름부터 투박한 ‘근육질(Muscle)’ 의 미국산 자동차를 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마 100가지도 넘게 댈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사람, 겉만 보고 모르듯 자동차 또한 외피만 봐선 그 깊은 속을 다 알 수 없다. 머슬카도 예외일 리 없다.

머슬카의 전성기는 1960년대까지였다. 이후 세계는 효율과 친환경의 시대로 진입했다. 1940년대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LA 스모그 사건이 단초였고, 1970년대에 불거진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결정타였다. 미국 정부는 청정공기법(Clean Air Act)이라는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를 서둘렀고 1960년대를 수놓은 머슬카 중 어떤 것도 그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미국의 소비자도 더 이상 헤프고 운전성도 떨어지는 머슬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작지만 날렵하고 기름은 훨씬 덜 먹는 일본차를 더 저렴한 비용에 장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 자리가 좁아진 머슬카는 상당수 제품이 사라지거나 과거의 명성에 기대 가까스로 명맥만 이어갔다.

그대로 멸종되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머슬카는 결국 다시 부활했다. 2000년대 중반 세계경제의 고속 성장과 함께. 1960년대에 포니카 붐을 일으킨 포드 머스탱이 포문을 열었고 닷지 챌린저와 쉐보레 카마로가 뒤를 이었다. 전성기 시절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들 신세대 머슬카들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했다. 디자인만 고수한 건 아니었다. 머스탱은 오리지널 모델부터 써온 ‘라이브 액슬 뒤 서스펜션’ 설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카마로는 푸시로드 방식의 스몰블록 V8 엔진을 개량해 얹었다. 하나같이 과거의 머슬카와 함께 도태돼 사라질 뻔한 구식 기술이었다. 그보다 나은 유럽식 기술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장년층이 된 베이비붐 세대뿐 아니라 미국의 새로운 속도광들도 함께 열광했다. 그건,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킨 ‘한 남자’에 대한 기립 박수라 해도 좋았다. 미국 남자들은 있는 힘껏 달릴 때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 차고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차와 씨름했다. 밤마다 즐기고 싶어 만든 차는 핫 로드라는 문화로 이어지고 머슬카라는 하나의 자동차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한때 멸종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머슬카의 뜨거운 에너지와 화끈한 스타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옛 방식을 고집했고, 기어이 과거의 영광까지 되찾았다.

모름지기 ‘플레이보이’라면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 아직도 노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바보는 천재를 이기지 못하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는 격언을 떠올려보시길.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존재를 하나 알고 있다. ‘뚝심 있는 플레이보이들’이 일궈낸 위대한(?) 성과, 머슬카 말이다.

TIP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미국 머슬카는 쉐보레 카마로 SS(5098만 원)와 포드 머스탱 GT(쿠페 6035만 원, 컨버터블 6535만 원) 두 종류다. 둘 다 현대적 기술과 감각으로 재단장한 터라 ‘머슬카 정신’을 유쾌하고 편안하게 만끽할 수 있다.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 여기서 얘기하는 ‘머슬카’는 특정 자동차라기보다는 그런 ‘태도’나 ‘취향’에 가깝다. 즉 제대로 놀 준비가 돼 있다면 그 상대는 머슬카가 아닌 그 어떤 자동차라도 상관없다는 의미다. 최근 출시한 제네시스 G70(3750만~5410만 원)이나 기아 스팅어(3500만~4880만 원) 정도면 머슬카 못지않은 ‘놀이의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거다.

김형준 | 국내 최고 자동차 전문 매거진 <모터 트렌드> 편집장이다. 그는 자동차에 관한 일이라면 냉정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며 매달 매력적인 이슈를 지면에 담는다.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일러스트 이승범
  • 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