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겜 배틀그라운드, 과다출혈 입문기

오늘도 '치킨 두번 먹는 배린이'를 꿈꾼다.

갓겜 배틀그라운드, 과다출혈 입문기
캐릭터가 굉장히 탄탄해보이고 멋져서 흡족했다.

갓겜 배틀그라운드, 과다출혈 입문기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피시방에 왔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향취, 라면 냄새, 담배 냄새, 요란한 폭격음이 섞였다. 좁아터진 복도에는 거대한 사장님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두툼한 패딩까지 하나씩 걸쳐 놓으니 복도를 걷는다기보다 늪지대를 헤쳐가는 기분이었다. 일단 앉았다. 쿠션감 하나는 좋았다.

갓겜 배틀그라운드, 과다출혈 입문기
출처: hornslied.tistory.com/34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컴퓨터 본체가 보였다. 스피커 볼륨 조절 버튼인 줄 알았던 그것을 누르니 거대한 모니터의 전원이 켜졌다. 기분 좋게 법인 카드로 정산을 마치고 게임을 시작하려는데 대뜸 ‘디스코드’라는 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단다. 이걸 켜야 헤드셋으로 말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이미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 플레이어들 때문에 “방안에 3명!”, “차 뒤에 저XX 죽여” 따위의 전쟁터에서나 들릴법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우성 속에서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힘들었다. 디스코드에 가입했다. 일단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남자친구의 음성 하나만 믿고 갔다. 1년 정도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그렇게 의존한 것은 세상 처음이었다. 왜냐면 배그는 전혀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처음 접속하는데 그 흔한 튜토리얼 과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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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에디터의 캐릭터. (오른쪽) 속옷만 입고 패딩은 왜 입혔는지 궁금한 튜터의 캐릭터.

캐릭터를 설정하는 단계. 흑인의 다부진 체형의 남자가 서 있다. 청바지와 검은 티를 매칭했다가 민소매 티셔츠로 바꿨다. <프린세스 메이커> 하는 게 아니니까 코디네이션에 고심하지 않고, 남자친구의 모니터를 슬쩍 봤다. 웬 여자가 속옷만 입은 채 헐벗고 있었다. “네 캐릭터 왜 저래? 다 벗겨 놓고 패딩 하나 입힌 건 무슨 이유야?” 남자친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전략이다. 남자는 무게가 나가니까 빨리 못 달리잖아. 옷은 입을수록 몸이 무거워지니까 아무것도 안 입혔고. 근데 추울까 봐 패딩만 하나 입혔어” 게임 중에 방독면을 득템해도 방어력이 1도 안 올라가는 게임이란 걸 알았다면 그때 속 후련하게 한마디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도 벗겨야지. 이 남자 바지는 벗길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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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게임이 시작됐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동지애 자극하는 O.S.T가 흘렀다. 왠지 살아남아야 할 것 같았다. 허허벌판에 난민 같은 사람들이 떼거리로 나타났다. 누구는 점프하고 누구는 가만히 있었다. 엄청 달리는 인간도 있었다. 프라이팬을 들고 날뛰는 인간도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나도 여기서 누굴 하나 때려눕혀야 하나?’ 흡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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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볼 줄도 모르면서 계속 켜는 맵.jpg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전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헐. 뭐지? 요란한 모터 소리에 움츠러들었다. 남자친구는 의미심장하게 운을 뗐다. “자, 이제 우린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거야” 진짜 뛰어내리는 것도 아닌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뭐라고? 어떻게 뛰어내리는데?”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변하는 속력과 방향, 미터당 속력 126일 때를 맞춰 뛰어내려야 한다고 했다. 뭔 소린지 몰라서 일단 점프. 낙하산도 펼칠 타이밍이 있다며 그동안 키 조작법을 알려주는데 그때부터 정신적 혼란이 왔다. 욕 나올 정도로 많은 키보드 조작법들. 무수한 기능들을 읊는데 정신이 혼미했다. 일단 W키와 Shift키, 엎드리기, 앉기, 클릭은 공격 정도만 외웠다. 들판을 달렸다. 신나서 W와 Shift 키를 오지게 누르고 있으니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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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파밍 하는 법을 배웠다. 파밍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버려진 집을 터는 일이었다. 탈탈 터는 게 중요해 보였다. 모르는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줍는 일이 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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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같이 생긴 방탄모를 주웠고, 곧이어 장총도 주웠다. 엽총, 소총, 우지(?)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총이 헷갈렸다. 유튜버의 입문 영상을 보면 총마다 쓰이는 곳이 다르다던데, 그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총알을 주워도 어디에 껴야 하는지 몰랐다. 장전도 못했다. 동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적을 한 명 쏴죽이자 방언이 터졌다. “헤드샷” 그 희열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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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를 하나 훔쳤다. 뛸 때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속도감이 차를 타니 확 달라졌다. 왠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뭘 좀 배웠다고 차 안에서 우클릭으로 정찰했다. 그러니 남자친구는 나무에 머리 부딪힌다며 들어오라고 했다. 나무에 받혀 죽는 건가 싶어서 얼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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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거리감까지 느껴지는 입체 음향이 머리 위까지 왔을 때는 죽는가 싶었다. 굉음의 정체는 비행기였다. 구호물자를 떨어뜨려 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것. 한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아주 멀리서 날아오는 총알에 머리를 맞았다. 기분이 제법 더러워지도록 화면에 혈흔이 낭자했다. 설상가상 자기장이라고 하는 범위를 넘어갔다고 시시때때로 피까지 닳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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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엎드려있는데 남자친구가 살려주겠다고 달려왔다. 손을 잡아주면 살릴 수 있단다. 남자친구는 플레이보이에 실을 체험기니 특별히 뒤에서 손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고오맙다” 황급히 에너지 드링크를 “쭙쭙” 먹고, 붕대도 열심히 감았다. “충전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정말 딱 두 게임 했는데 1시간이 지났다. 여기서 게임의 몰입도를 인정하는 바다. 웬만해선 한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5분 남았다는 기계음을 듣자마자 “한 시간만 더”하고 읊조렸기 때문이다. 집에 게임용 데스크톱을 들여놓지 않는 한 피시 방에서나 플레이할 수 있는 내 신세. 퇴근하고 피시 방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유튜버 채널의 배그 강의를 즐겨본다. 언젠가 배그 입문자가 아닌 치킨 잘 먹는 진짜 ‘배린이’가 되는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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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첫판 6등이면 잘 한 거 아닌가?’라고 잘도 생각하는 파렴치한 배린이.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사진제공 Olhastock/Shutterstock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