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da Dias Pimentel

수녀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시에서 살고 있는 10월의 플레이메이트 힐다 디아스 피멘텔은 이 세상을 그녀의 집으로 삼으며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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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브라질 남동 지역에 위치한 비토리아 섬의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섹스와 결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아주 엄격한 가치를 주입하는 수녀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저는 그 당시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는 어린 나이였죠. 그런 가치들이 제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스스로 독립적이게 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8살이 된 지금, 전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믿음은 모두 존중해요. 저는 사람이 가진 기운과 좋은 업보를 믿어요. 다시 말해서 누구든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종교가 연민을 통해 우리를 통합시키는 대신 판단의 무기로도 사용될 수도 있다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당신 주변에 브라질 가족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아주 끈끈해요. 아주 시끄럽고 노골적인 편이죠. 저는 아주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어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서 초콜렛 우유를 한 잔 타 마시고 침대에 누워 해리포터 책을 읽는 그런 아이였죠. 하지만 제 가족들을 그런 저를 단련시켜주었어요. 엄마는 선생님이자 전문 댄서였는데 저에게 발레를 배워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죠. 그러다 14살이 되었을 즈음에는 춤을 포기했어요. 선생님께선 제 키가 너무 커서 파트너를 찾기 힘들 거라 하셨거든요. 당시에는 실망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제 키가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16살이었을 때 국제 모델 스카우트단이 우리 도시에 찾아왔어요. 저는 그때까지 모델이 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가족들이 계속 제게 “넌 정말 키가 크니까 한번 도전해봐!”라고 말했죠. 결국 전 두 가지 단계의 스카우트를 거친 후 그해 11월에 엄마와 함께 상파울루에 가서 계약을 하고 다음 해 1월 밀라노에 있을 수 있게 됐죠.

누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선 후에서야 제 자신의 결점을 좀 더 자신감 있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모델 일을 하면서 저는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이라든지, 요리하는 방법, 돈 관리법 등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야만 했어요. 흰옷과 색깔 옷을 구분해서 세탁해야 한다는 걸 배우기 전에 옷도 많이 버렸어요. 이제 전 12년 차 모델이에요. 유럽과 아시아뿐 아니라 남아프리카에서도 살아봤어요. 하지만 저는 5년 전만 해도, “저기 있잖아요, 더는 못하겠어요! 그만 둘래요. 이제 짐 가방을 내려놓고 숨 좀 쉬고 식물도 좀 키울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해요,”라는 상태였답니다. 그때 뉴욕에 자리를 잡으면서 안정감을 조금 되찾을 수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아주 훌륭한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도 따냈죠. 최근에는 남자친구와 동거하기 시작했고 뉴욕 예술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을 듣고 있어요.

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해로운 생각을 떨쳐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치유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누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한 후에서야 제가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좀 더 자신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지금 이 플랫폼을 통해 젊은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를 단순히 “그냥 모델”로만 치부하며 잠재력을 막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어떤 하루를 보내든지 누군가가 당신을 그런 취급하지 못하도록 해요. 여성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길 바라요.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당신의 즐거움을 찾으세요. 그리고 두려움 없이 추구하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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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브라질, 비토리아 현재 거주지 뉴욕시, 뉴욕

음악 수업 음악은 항상 제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음악을 통해 영어 단어의 발음을 배웠죠. 8살 때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의 음악을 듣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라 부르곤 했어요.

마법사 10대 시절 저는 해리포터를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시리우스 블랙이 죽었을 때 엉엉 울었고 해리가 행복해할 땐 저도 웃었어요. 책에 홀딱 빠져들어 감정 이입을 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죠. 저라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어떤 소속이었겠느냐고요? 그리핀도르요.  

공포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요. 건물 꼭대기에 난간이 없다면 바로 땀이 나기 시작해요. 엄청나게 덤벙거리거든요. 떨어져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자기 돌봄 제가 지금껏 받은 최고의 조언은 다른 사람들의 컵을 가득 채우는 데 신경을 쓰느라 내 컵을 비워 두지 말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우선 당신 자신을 돌봐야 해요.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도 계속해서 되새기는 말이기도 해요.

설렘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부터 정리정돈에 집착하게 되었어요. 가게에 가서 박스를 여러 개 사 와서 모든 걸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주변이 아주 깔끔해요. 저는 좋은 환경에 놓이면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모델 업계 처음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땐 이 업계의 미적 기준이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어요. 많은 사람으로부터 눈썹을 좀 다듬으라는 말을 들었고, 눈동자가 푸른색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를 싫어했죠. 게다가 태닝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죠. 제게도 맞는 틈새시장이 생겼거든요. 사람들은 이제 독특한 특성을 가진 모델들에게 더 관심을 갖죠. 제 풍성한 눈썹도 더 각광 받고 있죠. 전반적으로 보자면 아직도 미적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좀 더 다양해지고 있고 ‘자기애’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목소리 저는 사람들이 숀 킹이 하는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정의의 영역에서 더 많은 목소리에 주목해야 해요. 우리 세대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기업과 매거진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연예인 저는 키아누 리브스를 아주 좋아해요.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말도 안 되는 것에 돈을 쓰지 않아요. 그에게는 백혈병을 앓던 여동생이 있었는데, 수백만 달러를 연구비로 기부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털털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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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백가경
  • 번역 이연정
  • 모델 Hilda Dias Pimentel
  • 포토그래퍼 Ail Mitton
  • PLAYBOY US 편집팀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