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안 뮐러

섹스 심벌로 시작해 현재는 건강 전도사가 된 그의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는 정말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사진작가예요”라고 뮐러는 자신을 설득해 누드로 포즈를 취하고 이런 사진을 찍도록 해 준 랜달에 대해 말한다.

남부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시골 작은 농장에서 자랐어요. 농장에는 소와 돼지를 각각 한 마리, 닭 여러 마리, 개 한 마리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죠. 제가 두 살 정도 됐을 때 부모님은 이혼 했고 아버지는 집을 떠났어요. 우리는 꽤 가난한 편이었지만 어머니는 저와 제 오빠, 그리고 언니들을 아주 많이 사랑했고 우리 모두를 그 누구보다 잘 돌봤어요. 제가 열한 살이 됐을 때,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야만 했어요. 그 후로 5년간 어머니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유조선에서 일하면서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했어요.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모두 살 연립 주택을 샀어요.

저는 언제나 신이 저를 위한 계획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에게도 일종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저를 살렸어요. 가난과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슬픔을 견딜 힘을 줬으니까요.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어요. 저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의지와 욕구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은 이렇게 넘어졌지만 아직 쓰러진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자랐어요. 제가 어른이 되면 중요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거의 졸업할 무렵, 군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그와 함께 런던으로 가게 됐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 했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섹시하다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졸업한 후, 바로 일이 쏟아지기 시작했죠. 저는 <The Sun>의 ‘Page 3 Girl’이 됐어요. 그때 사진작가인 수즈 랜달(Suze Randall)이 절 눈여겨 봤고, 제게 누드 사진을 찍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페이지 3 걸’ 촬영을 하면서 상반신을 노출한 적은 있지만, 누드 촬영을 한 적은 없었어요. 너무 부끄러웠는데 그가 저를 설득했어요. 이후로 헤프너가 제 사진을 봤고, 순식간에 전 <플레이보이>의 센터폴드 촬영을 위해 시카고로 이동하게 됐답니다.

처음 휴 헤프너를 만났을 때 너무 기가 죽어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그는 아마 절 토마토 같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거든요. 게다가 엄청 눈치 보고 있고, 화보 촬영장에 가는 길이라 화장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죠. 반면 그는 리무진을 타고 왔어요. 저는 그때 처음 리무진을 본 거였어요. 맨션도 아주 럭셔리해서 마치 천국에 온 줄 알았어요. 그는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어요. 하지만 절 침대에까지 초대하지는 못했죠. 전 속으로 ‘우선은 그를 좀 더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카고에 몇 주 머물렀어요. 하지만 헤프너가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물론이죠!”라고 저는 대답했어요. 로스앤젤레스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해변과 영화배우가 있는 곳이라는 것뿐이었어요. 우리는 플레이보이 맨션 웨스트로 갔어요. 그곳에서 누굴 만났는지 알아요?

리차드 페글리가 로스앤젤레스에 자리한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촬영한 뮐러의 1976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피처 기사 중 B컷.

바비 벤턴(Barbi Benton)이요! 세상에. 전혀 몰랐어요. 그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완전 드라마 같은 상황이잖아요. 저는 그들의 관계나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어요. 안 그랬다면 그냥 그곳을 떠났겠죠. 저는 그 둘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헤프너가 저에게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그곳에 계속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와 사랑에 빠졌어요.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됐어요.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처음부터 일종의 전투 같았어요. 저는 제가 그를 다른 여자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마지막에는 제가 그런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떠났죠. 한참이 지나 그가 그렇게 떠난 저를 용서한 후, 다시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답니다. 계속 연락하는 사이요. 우리는 서로 강한 연대감을 느끼는 사이예요.

플레이보이가 시카고에 초대하기 전, 수즈 랜달이 런던에서 촬영한 뮐러. “그의 사진들이 저를 플레이보이에 실릴 수 있게 해줬어요”라고 뮐러는 말한다.

플레이보이는 저에게 중요한 시작점이 됐어요. 그동안 저는 미국과 유럽 등지의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 그리고 리얼리티 쇼에 참여 해왔어요. 심지어 제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답니다! 축복받았다고 볼 수 있죠. 로드 스튜어트(그는 정말 젠틀한 남자더군요)의 <Da Ya Think I’m Sexy?>와 반 헤일런의 <Hot for Teacher>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고요. 제가 쉰아홉 살이었을 때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에서 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50세 이상의 채식주의자 여성으로 선정하기도 했답니다. 그 나이에 그렇게 멋진 타이틀로 선정되다니 재미있었어요! 저는 철저한 비건이자 동물 보호 운동가예요. 그런 의미에서 전 채식만을 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한답니다.

이제 68세인 저는, 노르웨이에서 공식적으로 고령자. 즉, 노인이에요. 하지만 전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믿는답니다. 최근에는 노르웨이에서 출간된 자기계발서를 쓰기도 했어요. 제목은 <Si JA til Livet!>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인생에 “네”라고 답하자!/(Say YES to Life!)>라는 거예요. 미국에서도 출간하기 위해 제 딸이 영어로 번역을 하는 것이 현재 목표예요. 제가 쓴 첫 책, <40세 넘어서도 최고로 느끼고 아름답기/(Feel Great, Be Beautiful Over 40)>는 1995년에 출간됐는데, 이 책 덕분에 저는 섹스 심벌에서 건강 전도사가 될 수 있었어요. 이번 책에서는 건강 그리고 웰빙을 위한 요리법, 장수, 젊음을 유지하는 법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성장에 관해 많이 다루고 있어요.

“요즘에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제 제 평생의 업적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가장 높은 잠재력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지금의 제 모습이 자랑스러워요. 그것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일부랍니다: 스스로 잘 돌보도록 하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건전한 견해를 갖고 활력 넘치게 살도록 하세요. 이 조언을 기억하세요: “당신부터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세요” 저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전 저 자신에게 매일 묻는답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절 흥분하게 만들어요. 제가 자랑스럽다고 느낄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쁘게 만들어요.

저는 제 몸이 부끄럽지 않아요. 사람들이 누드에 대해 비하하거나 비판을 하는 이유는, 사실 본인 자신을 많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플레이보이에 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플레이보이가 없었다면,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제 딸도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딸의 아빠를 미국에서 만났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재의 제 위치에도 오르지 못했겠죠. 플레이보이를 발판으로 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어요. 노르웨이의 어디인지도 모를 농장 출신의 작은 소녀가 말이에요. 신의 뜻은 참 신비롭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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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지
  • 포토그래퍼 SUZE RANDALL, RICHARD FEGLEY
  • PLAYBOY US 편집팀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